빨치산희생자추모기념탑 김알렉산드라처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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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ыезжаем из центра по улице Муравьёва-Амурского, затем по улице Промышленная, у дороги справа овраг.

하바로브스크주 하바로브스크 시내를 빠져나가 무라비예프-아무르스카야 거리를 따라 하바로브스크 공장으로 향하여가다 프로뮈쉴렌나야 거리를 지난 후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모퉁이 계곡 

 

한인사회당 창건자 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가 처형된 곳

 

한인사회당 창건자 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가 처형된 곳이다.

1918~1920년 시베리아 내전 당시 소비에트 권력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 백위파와 외국 간섭 군에 의하여 처형되었던 곳으로 러시아

사람들은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알렉산드라의 본명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스탄케비치)으로 아버지는 함경도 경원 출신의 김두서이다.

아버지가 극동시베리아로 이주하였으며,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출생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학교를 졸업하고 교원이 되었다.

아버지의 친구인 스탄케비치의 아들과 혼인하였으나 1914년에 이혼하고 1915년부터 우랄 지방의 벌목장에서 통역으로 일하였다.

1917년 초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러시아공산당 전신)에 입당하였다가 1918년 4월 이동휘(李東輝)·김립(金立)·박애(朴愛)·오성묵(吳成默) 등이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동맹을 결성할 때 여기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동휘 등이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레닌집단과 관련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볼셰비키(赤派)였다. 백파(白派)에 붙잡혀 1918년 9월 처형되기 전에 극동볼셰비키당대회에 참가하여 하바로프스크시당 비서로 선출되었으며, 극동인민위원회(정부)의 외무위원장(외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을 러시아 볼셰비키당에서는 ‘인터내셔널리스트’들이라고 부른다.

 

비문에는 소비에트 권력을 위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항상 기억하라 는 문구가 들어 있다.

추모기념탑에는 김 알렉산드라를 비롯한 인명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사회주의 지도자로서만이 아니라 애족적인 항일운동가로서 김 알렉산드라의 역할은 강조되어야 한다.

아래쪽으로 작은 계곡이 이어지고 있고 대체로 잘 관리되고 있다. 

 

 

 빨치산희생자 추모 기념탑

  1918~1920 시베리아내전 당시 소비에트권력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 백위파와 외국간섭군에 의하여 처형되었던 곳으로 러시아사람들은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비문에는소비에트 권력을 위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항상 기억하라 문구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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