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을 기념하여 세운 비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Владивосток, улица Хабаровская 26A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카야 26A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을 기념하여 세운 비이다. 러시아 연해주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한인 거주지이며, 연해주 독립운동의 총본산인 신한촌의 역사적 의의를 기념하는 탑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최초의 한인 집단 거주구역인 개척리가 폐쇄되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 1911년에 건설된 신한촌은 블라디보스토크시 서북방, 개척리의 정북방에 있었다. 신한촌은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명인 이상설, 연해주 일대의 재정적 후우너자였던 최재현 그리고 이동휘 등 항일 민족 애국지사들의 집결지였고 국외독립운동의 중추기지였..
Красный Яр, Ussuriysk, Primorskiy kray. 우수리스크 크라스노야로프 마을 ‘크라스노야로프성’이라고도 하는데 절벽을 방어시설로, 강을 자연 해자로 이용한 산성 ‘크라스노야로프성’이라고도 하는데 절벽을 방어시설로, 강을 자연 해자로 이용한 산성이다. 성의 기본 평면은 반월형 형태를 하고 있으며, 강에서 보이는 산성의 외형은 대동강을 낀 평양성과 백마강을 낀 부소산성을 연상시킨다. 내성, 외성, 동암성 등 세 구역으로 이루어졌다. 외성은 전체 길이가 8㎞이상이 되며, 성의 외벽은 일부 2~3중으로 되어있다. 성벽 높이는 3~5m정도이다. 1950년대 조사에서 내성 내부에서 100여개의 주춧돌이 확인되어 대규모의 목조건물지가 있었던 곳으로 확인되었다. 1995년 극동고고학연구소에서 ..
Утёс на берегу Амура в парке культуры и отдыха, город Хабаровск. 하바롭스크주 하바로브스크 문화휴식중앙공원 뒷편의 아무르강변 1918년 9월 한인사회당 간부들이 백위파에 체포되어 끌려온 곳 1918년 9월 한인사회당 간부들이 백위파에 체포되어 끌려온 곳이다. 1918년 8월 출병한 일본군이 9월 초에 하바롭스크를 점령하자, 한인사회당 간부들은 각자 도피하였다. 김알렉산드라·유동열·이인섭·김립 등 10여 명은 바론 코르프호를 타고 아무르 강을 거슬러 흑룡주(아무르주)로 도피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백위파에게 체포되어 하바롭스크로 압송되었다. 유동열·김립·이인섭 등은 중국인으로 행세하며 무사히 석방되었으나, 김 알렉산드라는 카르미코프의 백위파군에 의하여..
Хабаровский Край, село Волочаевка, высота Июнь-Корань. 하바로브스크주 하바로브스크 보로차예프카마을 뒤 이윤코란 1922년 2월 볼로차예프카 전투 현장에서 희생된 빨치산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 1922년 2월 볼로차예프카 전투 현장에서 희생된 빨치산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 볼로차예프카 전투는 러시아혁명군이 하바로브스크를 해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전투다. 비문에는 ‘118명의 빨치산이 잠들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22년 2월 10일 볼로차예프카 전투에 참전한 고려혁명의용군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2월 11일 전투에서 승리하여 2월 14일 하바로프스크에 입성하였다. 이 전투에 참전한 한인들은 러시아 붉은 군대의 승리가 바로 조국의 독립과 ..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Уссурийск в окрестности села Утёсное, у реки Раздольная. 연해주 우수리스크 우쪼스노예 마을 주변, 라즈돌리노예강 옆 1906년 북간도 독립운동 근거지독립운동계의 대표적인 지도자 이상설은 1906년 북간도 독립운동 근거지였던 용정에 서전서숙을 개숙한 뒤 이듬해 7월 헤이그특사의 정사가 되어 구국 외교에 헌신하였으며, 1908년 연해주로 망명한 뒤로는 십삼도의군 창설과 성명회 결성, 그리고 권업회 활동 등을 지도했던 독립운동계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다. 이상설은 1906년 북간도 독립운동 근거지였던 용정에 서전서숙을 개숙한 뒤 이듬해 7월 헤이그특사의 정사가 되어 구국 외교에 헌신하였으며, 1908년 연해주로 망명한 뒤로는 십삼도의군 창..
이동녕선생 거주지 위치중경시 기강구 타만 87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기강에 머물던 시기에 이동녕선생이 거주했던 집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기강에 머물던 시기 이동녕이 거주했던 집이다. 경사진 면에 지어진 1층 벽돌건물이다. 좌우 2채로 보이지만, 사실상 한 동의 건물이며, 정면에서 볼 때 좌측 앞쪽 방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다. 이동녕은 1939년 임정의 네 번째 주석(1939~1940)으로 선출된 후 김구와 함께 전시 내각을 구성, 서안에 군사특파단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후 반평생을 해외에서 임시정부를 이끌며 조국광복의 일념에 투쟁하던 그는 과로가 겹쳐 1940년 3월 13일 72세 때 기강 임정청사에서 영면하였다. 건물은 입구의 한 칸이 없어지거나 덧붙여지는 등 다소 변화한 상..
토교한인촌기념비 위치 : 중경시 파남구 화계촌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 한국광복군 산하 토교대 대원들이 거주했던 곳 1940년 8월 기강에서 중경으로 옮겨온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은 토교 동감 폭포 위에 큰 기와집 3채를 짓고 살았으며, 길가의 2층 기와집을 사서 100여 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지금은 폐허에 가까운 1채만 남아 있고 도로공사로 폭포도 자취를 감추었다. 임정이 중경으로 옮겨온 뒤 중국진재위원회로부터 6만원의 원조를 받아 토교에 15년 기한으로 5천원을 내고 2천 여평의 땅을 사서 그 가족들을 이곳에 살게 하였다고 한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는 이들을 훈련해 일종의 보충대인 토교대를 조직하였는데, 현 한교기독교청년회관 구내에 한국광복군 훈련병들의 숙소 및 훈련장이 있었다..
춘천 정미의병 때 화약제조와 훈련이 이루어졌던 곳 변형 / 현재 화약제조장과 훈련장 자리는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다. 내용 1907년 8월 춘천 남면 가정리의 유홍석(柳弘錫)은 족숙인 유중악(柳重岳) 등과 창의를 모의하였다. 가정리 황골에서 박선명·유영석·유제곤·박화지·유태석 등과 함께 짧은 시일 내에 600여 명의 병사를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유홍석은 6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병활동을 총괄하는 의병장을 맡았고, 박선명(朴善明)은‘총대장’을 자칭했을 정도로 의병활동을 주도하였다. 유홍석의병은 춘천과 가평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며, 일본군의 전신선 절단, 통행로 차단, 친일부호와 세금징수원을 습격하여 군자금을 확보하거나, 친일관료들을 붙잡아 징치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춘천의 진병산과 가..
위 치 상해시 홍구구 사천북로 2288호(노신공원 내) 역사적 의의 윤봉길의사가 1932년 4월 29일 폭탄을 던져 일제의 군부와 정관계 수뇌부를 처단했던 곳 해 설 1932년 4월 29일 한인애국단 단원 윤봉길이 일제가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기념식 및 상해사변 승리축하식을 거행하는 것을 이용하여 일제의 군부와 정관계 수뇌부 7명을 처단하는 의거를 일으킨 곳이다. 윤봉길은 일본인으로 가장하고 기념식장에 잠입한 후 식장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오전 11시 미리 준비해 온 도시락 폭탄을 일본군 수뇌부가 있던 연단을 향해 투척하였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연기와 함께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폭탄의 파편에 맞은 시라카와(白川) 대장은 5월 26일 사망했으며, 같은 자리에 있던 다수의 일본..
위치 상해시 능원로 21호 송경령능원 역사적의의 1910~30년대 상해에서 활동했던 한인독립운동자들이 묻혀있는 묘지 해설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인들의 묘는 원래 정안사로에 있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과 상해시의 도시재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철거된 후 한인독립운동자 등 외국인 묘 가운데 일부가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만국공묘에는 한국인의 묘로 확인 또는 추정되는㺎기의 묘가 있다. 이 가운데 노백린, 박은식, 신규식, 안태국, 김인전 등م기는燉년و월م일에 봉환되었고, 윤현진, 오영선 등ق기는燋년ن월㺕일에 봉환되었다. 안태국 묘터 바로 옆에는 조상섭으로 추정되는 표석과 임계호 등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표석이 남아 있다. 만국공묘는 중국 정부에서 관리하며,熽년ن월에 송경령능원으로 개칭되었다...
위치 Выезжаем из центра по улице Муравьёва-Амурского, затем по улице Промышленная, у дороги справа овраг. 하바로브스크주 하바로브스크 시내를 빠져나가 무라비예프-아무르스카야 거리를 따라 하바로브스크 공장으로 향하여가다 프로뮈쉴렌나야 거리를 지난 후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모퉁이 계곡 역사적의의한인사회당 창건자 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가 처형된 곳 해설한인사회당 창건자 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가 처형된 곳이다. 1918~1920년 시베리아 내전 당시 소비에트 권력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 백위파와 외국 간섭 군에 의하여 처형되었던 곳으로 러시아 사람들은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알렉산드라의 본명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스탄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