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 남면 가정리 여의내골 의병훈련장 및 무기제조 장소
광주시 중산3로 광주기의열사릉원 내 광동혁명역사박물관은 아편전쟁(1840년)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료시까지의 주요 사건․인물․유물 등의 역사를 연구․ 전시하고 있다. 중국 1급 문물 20여점을 포함하여 문물․문헌 1만 3천여점, 전시품 1만여점, 역사사진 2만 5천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Утёс на берегу Амура в парке культуры и отдыха, город Хабаровск. 하바롭스크주 하바로브스크 문화휴식중앙공원 뒷편의 아무르강변 1918년 9월 한인사회당 간부들이 백위파에 체포되어 끌려온 곳
Хабаровский Край, село Волочаевка, высота Июнь-Корань. 하바로브스크주 하바로브스크 보로차예프카마을 뒤 이윤코란 1922년 2월 볼로차예프카 전투 현장에서 희생된 빨치산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Уссурийск в окрестности села Утёсное, у реки Раздольная. 연해주 우수리스크 우쪼스노예 마을 주변, 라즈돌리노예강 옆 1906년 북간도 독립운동 근거지 독립운동계의 대표적인 지도자 이상설은 1906년 북간도 독립운동 근거지였던 용정에 서전서숙을 개숙한 뒤 이듬해 7월 헤이그특사의 정사가 되어 구국 외교에 헌신하였으며, 1908년 연해주로 망명한 뒤로는 십삼도의군 창설과 성명회 결성, 그리고 권업회 활동 등을 지도했던 독립운동계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다.
이동녕선생 거주지 위치 중경시 기강구 타만 87호 대 한민국임시정부가 기강에 머물던 시기에 이동녕선생이 거주했던 집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기강에 머물던 시기 이동녕이 거주했던 집이다. 경사진 면에 지어진 1층 벽돌건물이다. 좌우 2채로 보이지만, 사실상 한 동의 건물이며, 정면에서 볼 때 좌측 앞쪽 방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다. 이동녕은 1939년 임정의 네 번째 주석(1939~1940)으로 선출된 후 김구와 함께 전시 내각을 구성, 서안에 군사특파단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후 반평생을 해외에서 임시정부를 이끌며 조국광복의 일념에 투쟁하던 그는 과로가 겹쳐 1940년 3월 13일 72세 때 기강 임정청사에서 영면하였다. 건물은 입구의 한 칸이 없어지거나 덧붙여지는 등 다소 변화한..
토교한인촌기념비 위치 : 중경시 파남구 화계촌 역사적의의 :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 한국광복군 산하 토교대 대원들이 거주했던 곳 해설 : 1940년 8월 기강에서 중경으로 옮겨온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은 토교 동감 폭포 위에 큰 기와집 3채를 짓고 살았으며, 길가의 2층 기와집을 사서 100여 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지금은 폐허에 가까운 1채만 남아 있고 도로공사로 폭포도 자취를 감추었다. 임정이 중경으로 옮겨온 뒤 중국진재위원회로부터 6만원의 원조를 받아 토교에 15년 기한으로 5천원을 내고 2천 여평의 땅을 사서 그 가족들을 이곳에 살게 하였다고 한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는 이들을 훈련해 일종의 보충대인 토교대를 조직하였는데, 현 한교기독교청년회관 구내에 한국광복군 훈련병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