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성 가흥시 매만가 76호 윤봉길의사 투탄의거 후 일제의 검거를 피해 가흥으로 피신한 김구가 피난처로 이용했던 곳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투탄의거 직후 김구는 미국인 목사 피치의 집에 피신하고 있다가, 저보성(褚輔成)의 도움으로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김구는 가흥으로 피신한 직후 ‘장진구’ 또는 ‘장진’이란 가명을 사용하면서, 저보성의 수양아들 진동생(陳桐生)의 별채인 매만가(梅灣街) 76호에 머물렀다. 김구와 관련된 유적지는 김구가 피난 시기에 머물렀던 건물과 ‘김구피난처 진열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총 부지면적은 1,420㎡이며, 건물 면적은 520㎡, 진열관 면적은 566㎡이다. 건물 입구에는 ‘대한민국 김구선생 항일시기 피난처’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2층 목조 건..
윤봉길의사가 1932년 4월 29일 폭탄을 던져 일제의 군부와 정관계 수뇌부를 처단했던 곳 위치 : 상해시 홍구구 사천북로 2288호(노신공원 내) 1932년 4월 29일 한인애국단 단원 윤봉길이 일제가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기념식 및 상해사변 승리축하식을 거행하는 것을 이용하여 일제의 군부와 정관계 수뇌부 7명을 처단하는 의거를 일으킨 곳이다. 윤봉길은 일본인으로 가장하고 기념식장에 잠입한 후 식장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오전 11시 미리 준비해 온 도시락 폭탄을 일본군 수뇌부가 있던 연단을 향해 투척하였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연기와 함께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폭탄의 파편에 맞은 시라카와(白川) 대장은 5월 26일 사망했으며, 같은 자리에 있던 다수의 일본군 수뇌부들이 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