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성 가흥시 해염현 남북호풍경구 재청별장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가흥에서 활동할 때 김구가 매만가 피난처 이후 사용했던 은신처 재청별장은 남북호에 위치해 있으며, 남북호 풍경구(南北湖風景區)에서 첫 번째로 건립된 근대식 별장이다. 해염현의 명망가인 주병수(朱丙壽)가 1916년 그의 둘째아들의 요양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투탄의거 이후 김구는 일제의 수배를 받게 되었다. 김구는 저보성(褚輔成)의 도움을 받아 상해에서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가흥에 도착한 직후 매만가 76호에서 생활하였으나, 일제의 포위망이 좁혀 오자 저보성의 장남 저봉장(楮鳳章)의 처가의 별장인 재청별장으로 옮겼다. 이 별장은 저봉장의 부인 주가예(朱佳蕊)의 숙부가 소유하고 있던 별장이었다. ..
절강성 가흥시 매만가 76호 윤봉길의사 투탄의거 후 일제의 검거를 피해 가흥으로 피신한 김구가 피난처로 이용했던 곳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투탄의거 직후 김구는 미국인 목사 피치의 집에 피신하고 있다가, 저보성(褚輔成)의 도움으로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김구는 가흥으로 피신한 직후 ‘장진구’ 또는 ‘장진’이란 가명을 사용하면서, 저보성의 수양아들 진동생(陳桐生)의 별채인 매만가(梅灣街) 76호에 머물렀다. 김구와 관련된 유적지는 김구가 피난 시기에 머물렀던 건물과 ‘김구피난처 진열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총 부지면적은 1,420㎡이며, 건물 면적은 520㎡, 진열관 면적은 566㎡이다. 건물 입구에는 ‘대한민국 김구선생 항일시기 피난처’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2층 목조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