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성 항주시 인화로 22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해를 떠나 항주에 도착한 직후 청사로 사용했던 건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4월 윤봉길의 투탄의거 직후 일제의 감시와 검거를 피해 상해를 떠나 항주에 도착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항주로 이전한 후 처음으로 사용한 청사가 청태 제2여사였다. 이곳 32호실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장 김철이 머물고 있었고, 임시 국무위원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인화로 22호로 지번이 바뀌었고, 청태 제2여사 자리에는 군영반점이 자리잡고 있다. 군영반점은 항주시 인민정부상업국 소속인 음식복무공사에 속한 국영여관 겸 음식점이다. 외부 모습은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있지만, 안쪽에는 아직도 옛 모습이 남아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곳 청태 제2여사에서 잠시 머물다가 호변촌..
절강성 가흥시 해염현 남북호풍경구 재청별장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가흥에서 활동할 때 김구가 매만가 피난처 이후 사용했던 은신처 재청별장은 남북호에 위치해 있으며, 남북호 풍경구(南北湖風景區)에서 첫 번째로 건립된 근대식 별장이다. 해염현의 명망가인 주병수(朱丙壽)가 1916년 그의 둘째아들의 요양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투탄의거 이후 김구는 일제의 수배를 받게 되었다. 김구는 저보성(褚輔成)의 도움을 받아 상해에서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가흥에 도착한 직후 매만가 76호에서 생활하였으나, 일제의 포위망이 좁혀 오자 저보성의 장남 저봉장(楮鳳章)의 처가의 별장인 재청별장으로 옮겼다. 이 별장은 저봉장의 부인 주가예(朱佳蕊)의 숙부가 소유하고 있던 별장이었다. ..
절강성 가흥시 일휘교 17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항주에서 활동할 때 이동녕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잠시 피난 생활을 하던 곳 한국임시정부 요인들의 거주지는 가흥시 일휘교(日暉橋) 17호에 위치해 있다.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투탄의거 직후 김구는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이때 이동녕ㆍ박찬익ㆍ엄항섭ㆍ김의한 등과 그 가족들도 가흥으로 피신하여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일휘교 17번지는 김구가 피신하여 있던 매만가 76번지와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일휘교 17호 건물은 청조 말년에 나무와 벽돌로 만들어졌다. 2층 건물로 네 칸의 방과 마당이 있다. 총 부지 면적은 904㎡이며, 전시 면적은 332.5㎡이다. 1995년 가흥시가 자체적으로 보수 공사를 진행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사진 및 당시 사용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