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시 황포구 마당로 306롱 3-5호 임시정부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청사로 사용했던 건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사용했던 마지막 청사 건물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수립된 후 만 13년 동안 상해 프랑스 조계지 안에 청사를 두고 활동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장소나 청사의 위치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김신부로에서 제1회 의정원 회의가 개최된 후 수립되었지만, 이곳이 청사로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청사로 사용했던 건물도 한 두 곳이 아니었다. 여러 곳을 옮겨 다녔는데 현재 확인된 횟수만 해도 열 두 차례 이상이라고 한다. 임정 수립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청사 건물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등 공개적인 활동을 전개하였지만, 1919년 1..
윤봉길의사가 1932년 4월 29일 폭탄을 던져 일제의 군부와 정관계 수뇌부를 처단했던 곳 위치 : 상해시 홍구구 사천북로 2288호(노신공원 내) 1932년 4월 29일 한인애국단 단원 윤봉길이 일제가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기념식 및 상해사변 승리축하식을 거행하는 것을 이용하여 일제의 군부와 정관계 수뇌부 7명을 처단하는 의거를 일으킨 곳이다. 윤봉길은 일본인으로 가장하고 기념식장에 잠입한 후 식장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오전 11시 미리 준비해 온 도시락 폭탄을 일본군 수뇌부가 있던 연단을 향해 투척하였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연기와 함께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폭탄의 파편에 맞은 시라카와(白川) 대장은 5월 26일 사망했으며, 같은 자리에 있던 다수의 일본군 수뇌부들이 심한..
1910~30년대 상해에서 활동했던 한인 독립운동분들이 묻혀있는 묘지 위치 : 상해시 능원로 21호 송경령능원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인들의 묘는 원래 정안사로에 있었다. 중국의 문화 대혁명(1966~1976)과 상해시의 도시 재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철거된 후 한인 독립운동자 등 외국인 묘 가운데 일부가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만국공묘에는 한국인의 묘로 확인 또는 추정되는 14기의 묘가 있다. 이 가운데 노백린, 박은식, 신규식, 안태국, 김인전 등 5기는 1993년 8월 5일에 봉환되었고, 윤현진, 오영선 등 2기는 1995년 6월 21일에 봉환되었다. 안태국 묘터 바로 옆에는 조상섭으로 추정되는 표석과 임계호 등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표석이 남아 있다. 만국공묘는 중국 정부에서 관리하며, 1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