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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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시 한구로 22번지

 

일본군이 남경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 등의 만행을 전시해 놓은 장소

 

 

금릉대학(金陵大學)의 전신은 1888년 미국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회문서원(匯文書院)이었다.

1910년 회문서원과 기독(基督)․익지(益智)서원을 통합하여 건립한 굉육서원(宏育書院)이 병합하여 금릉대학을 정식으로 창립하였다.

당시 명칭은 금릉대학당(金陵大學堂)이었고, 1915년 금릉대학으로 개명하였다.

이후 1952년 남경대학에 합병되었다.

 

  금릉대학은 한국독립운동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1910년대부터 한인유학생이 이곳에 입학했고, 이중 다수가 한국독립운동사에 투신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여운형, 선우훈, 서병호, 백남칠, 조동호, 현창운, 김마리아 등이었고, 이들은 대체로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여운형은 1915년 2월 금릉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뒤 1917년 7월 상해로 이동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1918년 신한청년당 조직과

1919년 4월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서병호 역시 1915년 하반기 금릉대학에 입학한 뒤 신한청년당 조직과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이밖에 이훈구는 1930년에 금릉대학 농업경제과 교수로 재임하기도 했다.

 

  이와 별도로 남경대학은 1902 삼강사범학당에서 출발했고, 이후 국립중앙대학 여러 차례 교명이 바뀌었다.

이후 1952 금릉대학과 합병하여 지금의 남경대학이 되었다.

남경대학 역시 한국독립운동사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1920년대 중반 이래 민족유일당운동과 민족통일전선운동의 흐름에 따라 1935 한국독립당과 조선혁명당한국혁명당김원봉의

의열단 등이 모여 민족혁명당을 창립한 역사적인 장소가 바로 국립중앙대학(현재 남경대학)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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