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항(利濟)위안소진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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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성 남경시

 

일본군이 세운 가장 규모가 큰 난징의 위안소로 여기서 생활한 조선인 위안부의 생존사실이 알려지면서 조명을 받음

 

이제항위안소는 면적이 6700㎡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에 세운 위안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위안소 유적이다.

 

시멘트 담장과 가림막 너머 낡고 황량한 대형 건물 7동이 뉴스의 조명을 받게 된 것은 여기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던 조선인 위안부의 생존 사실이 확인되면서였다.

 

  그이가 당시 북한에 생존해 있다가 이제는 고인이 된 박영심(1921~2006) 할머니다. 평남 출신의 할머니는 17살이던 1939년, 난징의 위안소에 끌려와 긴스이루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다.

 

1944년 연합군이 촬영한 일본군 위안부 포로 사진에 임신한 모습으로 찍힌 이가 바로 그이다. 

  일본군은 난징을 점령하면서 바로 위안소를 설치했다.

 

난징 점령 후, 주둔군이 비교적 많았기 때문에 일본군 참모부 제2과에서는 난징 위안소 건립안을 제출, 군부의 심의를 거쳐 이를 확정했던 것이다. 난징대학살 기간 중에도 부후강과 철관항 등 두 군데의 위안소가 세워졌다.

 

  일본군이 난징에서 운영한 위안소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40여 개소에 이른다.

일본군 위안소 문제 연구의 권위자인 난징사범대 역사학과 징성훙(經盛鴻) 교수에 따르면 위안부 제도는 당시 일본 군국주의 정부의 중요한 국책이었다.

난징의 위안소는 난징 점령 후, 중지나(中支那) 방면군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대장의 지시로 설치되기 시작했다. 

 

  마쓰이가 위안소 설치를 지시한 것은 민간인 학살과 부녀자 강간, 성병 만연 등으로 일본군의 질서가 무너지고 전투력이 저하되는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래서였던가, 난징은 일본군이 지배한 8 동안(1937~1945) 위안소와 위안부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  

 

남경 이제항(利濟巷) 위치한 중국침략 일본군 위안소 터가 10년간 방치된 문화재 보호단위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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