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목청임시정부활동진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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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성 장사시 개복구 연승가 남목청향 6호

 

지청천池靑天이 당수로 있었던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구지에 만들어진 전시관

 

1938년 초 지청천을 중심으로 한 조선혁명당이 본부로 사용했던 곳이자 임시정부요인과 그 가족들이 거주했던 장소이다.

또한, 1938년 5월 7일 김구 선생이 3당 통합회의 도중 피격당한 ‘남목청 사건’으로 유명한 장소이기도 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한국 독립운동진영에서는 이를 민족해방과 조국광복의 기회로 보았다.

우익진영에서는 독립을 위한 통합과 단결을 위한 협동전선운동을 통해서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김구가 이끄는 한국 국민당韓國國民黨과 조소앙의 재건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지청천의 조선혁명당의 합당이 그것이다.

3당의 합당은 김구의 한국 국민당이 중심이 되었다.

당시 조선 민족 혁명당을 탈당한 지청천 계열은 조선혁명당을 창당하여 독자노선을 모색하고 있었고, 조소앙 등의 재건 한독당도

활발한 활동은 전개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조선혁명당과 재건 한독당은 재정여건이 열악하여 김구의 지원이 필요하였고, 김구 역시 이들과의 연합을 통해서 독립운동 세력을

응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1937 7 남경에서는 이들 당의 대표로서 송병조宋秉祚·홍진洪震·지청천이 모여 회담을 개최하였다.

이들은 공동선언서를 발표하여 임시정부를 옹호하고 강화하는 합의하였다. 이들은 미주지역의 단체들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로써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韓國光復運動團體聯合會가 결성되었다.

 

이러한 연합으로 자연스럽게 단체의 재편이 논의되는 과정에 불만도 있었다.

논의 가운데 조선혁명당의 강창제姜昌濟, 박창세朴昌世 등은 소외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에 이들은 이운한李雲漢을 이용하여 김구, 현익철玄益哲, 유동열柳東烈, 지청천 등에게 총격을 가하는 이른바남목청 사건 일으켰다. 당시 남목청 9호는 조선혁명당의 본부이면서 3당을 합당을 논의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회의장에 조선혁명당 간부 출신인 이운한이 난입하여 총을 발사한 것이다.

 

첫발에 김구를 시작으로 현익철, 유동열, 지청천이 각각 피격되었다. 현익철은 피격으로 사망하였다.

중국 경찰은 범인이 이운한임을 확인하고 체포하였고, 배후 인물이 박창세와 강창제라고 밝혔다. 2009 조선혁명당 본부 건물을 해체하여 복원하였다.

 

현재 전시관으로 사용되어 7~8 정도의 한국인 관람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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