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성 가흥시 해염현 남북호풍경구 재청별장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가흥에서 활동할 때 김구가 매만가 피난처 이후 사용했던 은신처 재청별장은 남북호에 위치해 있으며, 남북호 풍경구(南北湖風景區)에서 첫 번째로 건립된 근대식 별장이다. 해염현의 명망가인 주병수(朱丙壽)가 1916년 그의 둘째아들의 요양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투탄의거 이후 김구는 일제의 수배를 받게 되었다. 김구는 저보성(褚輔成)의 도움을 받아 상해에서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가흥에 도착한 직후 매만가 76호에서 생활하였으나, 일제의 포위망이 좁혀 오자 저보성의 장남 저봉장(楮鳳章)의 처가의 별장인 재청별장으로 옮겼다. 이 별장은 저봉장의 부인 주가예(朱佳蕊)의 숙부가 소유하고 있던 별장이었다. ..
절강성 가흥시 일휘교 17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항주에서 활동할 때 이동녕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잠시 피난 생활을 하던 곳 한국임시정부 요인들의 거주지는 가흥시 일휘교(日暉橋) 17호에 위치해 있다.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투탄의거 직후 김구는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이때 이동녕ㆍ박찬익ㆍ엄항섭ㆍ김의한 등과 그 가족들도 가흥으로 피신하여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일휘교 17번지는 김구가 피신하여 있던 매만가 76번지와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일휘교 17호 건물은 청조 말년에 나무와 벽돌로 만들어졌다. 2층 건물로 네 칸의 방과 마당이 있다. 총 부지 면적은 904㎡이며, 전시 면적은 332.5㎡이다. 1995년 가흥시가 자체적으로 보수 공사를 진행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사진 및 당시 사용했던..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Владивосток, улица Хабаровская 26A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카야 26A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을 기념하여 세운 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을 기념하여 세운 비이다. 러시아 연해주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한인 거주지이며, 연해주 독립운동의 총본산인 신한촌의 역사적 의의를 기념하는 탑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최초의 한인 집단 거주구역인 개척리가 폐쇄되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 1911년에 건설된 신한촌은 블라디보스토크시 서북방, 개척리의 정북방에 있었다. 신한촌은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명인 이상설, 연해주 일대의 재정적 후우너자였던 최재현 그리고 이동휘 등 항일 민족 애국지사들의 집결지였고 국외독립운동의 중추기지였..
절강성 가흥시 매만가 76호 윤봉길의사 투탄의거 후 일제의 검거를 피해 가흥으로 피신한 김구가 피난처로 이용했던 곳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투탄의거 직후 김구는 미국인 목사 피치의 집에 피신하고 있다가, 저보성(褚輔成)의 도움으로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김구는 가흥으로 피신한 직후 ‘장진구’ 또는 ‘장진’이란 가명을 사용하면서, 저보성의 수양아들 진동생(陳桐生)의 별채인 매만가(梅灣街) 76호에 머물렀다. 김구와 관련된 유적지는 김구가 피난 시기에 머물렀던 건물과 ‘김구피난처 진열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총 부지면적은 1,420㎡이며, 건물 면적은 520㎡, 진열관 면적은 566㎡이다. 건물 입구에는 ‘대한민국 김구선생 항일시기 피난처’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2층 목조 건..
상해시 황포구 마당로 306롱 3-5호 임시정부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청사로 사용했던 건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사용했던 마지막 청사 건물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수립된 후 만 13년 동안 상해 프랑스 조계지 안에 청사를 두고 활동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장소나 청사의 위치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김신부로에서 제1회 의정원 회의가 개최된 후 수립되었지만, 이곳이 청사로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청사로 사용했던 건물도 한 두 곳이 아니었다. 여러 곳을 옮겨 다녔는데 현재 확인된 횟수만 해도 열 두 차례 이상이라고 한다. 임정 수립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청사 건물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등 공개적인 활동을 전개하였지만, 1919년 1..
윤봉길의사가 1932년 4월 29일 폭탄을 던져 일제의 군부와 정관계 수뇌부를 처단했던 곳 위치 : 상해시 홍구구 사천북로 2288호(노신공원 내) 1932년 4월 29일 한인애국단 단원 윤봉길이 일제가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기념식 및 상해사변 승리축하식을 거행하는 것을 이용하여 일제의 군부와 정관계 수뇌부 7명을 처단하는 의거를 일으킨 곳이다. 윤봉길은 일본인으로 가장하고 기념식장에 잠입한 후 식장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오전 11시 미리 준비해 온 도시락 폭탄을 일본군 수뇌부가 있던 연단을 향해 투척하였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연기와 함께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폭탄의 파편에 맞은 시라카와(白川) 대장은 5월 26일 사망했으며, 같은 자리에 있던 다수의 일본군 수뇌부들이 심한..
1910~30년대 상해에서 활동했던 한인 독립운동분들이 묻혀있는 묘지 위치 : 상해시 능원로 21호 송경령능원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인들의 묘는 원래 정안사로에 있었다. 중국의 문화 대혁명(1966~1976)과 상해시의 도시 재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철거된 후 한인 독립운동자 등 외국인 묘 가운데 일부가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만국공묘에는 한국인의 묘로 확인 또는 추정되는 14기의 묘가 있다. 이 가운데 노백린, 박은식, 신규식, 안태국, 김인전 등 5기는 1993년 8월 5일에 봉환되었고, 윤현진, 오영선 등 2기는 1995년 6월 21일에 봉환되었다. 안태국 묘터 바로 옆에는 조상섭으로 추정되는 표석과 임계호 등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표석이 남아 있다. 만국공묘는 중국 정부에서 관리하며, 1981년..
충렬탑의봄
샘밭의 4일·9일장은 인근 화천과 양구, 홍천의 5일장과 장날이 겹치지 않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의 편의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이바지를 하고 있습니다.
위치 в 2 км от Краскино в Хасанском направлении (у дороги). 연해주 하산군 크라스키노 유니베라농장 입구 안중근의사가 동의단지회를 결행한 장소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연해주 의병장 안중근 의사가 1909년 2월 연추 하리에서 동지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결성한 것을 기념하여 2001년 10월 19일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비를 세웠다. ‘ 단지동맹유지’라는 제하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1909년 2월 7일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결사동지 김기용·백규삼·황병길·조응순·강순기·강창두·정원주·박봉석·유치홍·김백춘·김천화 등 12인은 이곳 크라스키노(연추 하리) 마을에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단지동맹하다. 이들은 태극기를 펼쳐놓고 각기 왼손 무..